상장폐지된 ETF 194종으로 본 폐지되기 전 전조 증상
살아남은 ETF만 보면 시장은 실제보다 좋아 보입니다. 폐지된 194종의 마지막 순간을 끝까지 따라가 전조 증상이 무엇인지, 지금 어떤 종목이 그 구간에 서 있는지 정리했습니다.
ETF 수익률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부분 현재 살아 있는 종목만 봅니다.
당연한 일이죠. 상장폐지된 ETF는 어떤 앱에서도 검색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 당연한 일이 통계를 조용히 망가뜨립니다. 성적이 나빴던 종목이 목록에서 사라지고 나면, 남은 것들의 평균은 실제보다 좋아 보입니다. 학계에서는 이걸 생존편향이라고 부릅니다.
ETF 연구소는 2020년 1월부터 국내 상장 ETF의 일별 시세를 하루도 빠짐없이 모아 왔습니다. 지금까지 쌓인 것이 118만 건이고, 그중에는 이미 사라진 194종의 마지막 거래일까지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그 194종을 연구해볼겁니다.
먼저 194종을 두 부류로 갈라야 합니다
숫자를 보기 전에 정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상장폐지라고 다 같은 상장폐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목록을 훑다 보면 이런 종목들이 눈에 띕니다.
| 마지막 거래일 | 종목명 | 그때 순자산 |
|---|---|---|
| 2025-10-14 | TIGER 25-10 회사채(A+이상)액티브 | 11,864억원 |
| 2023-11-20 | KBSTAR 23-11 회사채(AA-이상)액티브 | 5,215억원 |
| 2024-10-07 | TIGER 24-10 회사채(A+이상)액티브 | 4,752억원 |
| 2024-12-17 | TIGER 24-12 금융채(AA-이상) | 4,250억원 |
1조가 넘는 ETF가 상장폐지됐다니 무서운 이야기 같습니다. 그런데 종목명을 다시 보세요. 25-10, 23-11, 24-12. 숫자가 붙어 있죠.
이건 만기매칭형 채권 ETF입니다. 2025년 10월에 만기가 오는 채권들을 담아 놓고, 그날이 되면 돈을 돌려주고 문을 닫도록 처음부터 설계된 상품입니다. 예금이 만기되어 해지되는 것과 같습니다. 실패가 아니라 계획대로 끝난 겁니다.
194종 중 이런 종목이 32종입니다. 이걸 섞어 놓고 "1조짜리 ETF도 상장폐지된다"고 말하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서 갈랐습니다.
| 구분 | 종목 수 |
|---|---|
| 만기 도래로 정상 종료 | 32종 |
| 진짜 퇴출(청산) | 162종 |
지금부터 보실 숫자는 전부 이 162종에 대한 것입니다.
ETF는 얼마나 작아지면 상장폐지될까요?
162종이 마지막으로 거래된 날, 그 펀드에 남아 있던 돈이 얼마였는지 전부 꺼내 봤습니다.
| 구간 | 상장폐지 직전 순자산 |
|---|---|
| 가장 작았던 종목 | 1억원 |
| 하위 25% 지점 | 11억원 |
| 가운데 값(중앙값) | 23억원 |
| 상위 25% 지점 | 43억원 |
중앙값이 23억원입니다. ETF 하나가 문을 닫을 때 남아 있던 돈이 아파트 몇 채 값이었다는 뜻이죠.
비율로 보면 더 뚜렷합니다.
| 기준 | 그 아래였던 비율 |
|---|---|
| 순자산 50억원 미만 | 78.9% |
| 순자산 100억원 미만 | 82.5% |
| 순자산 300억원 미만 | 85.1% |
퇴출된 ETF 10개 중 8개가 마지막에 50억원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이게 왜 이런 모양이 나오냐면, 운용사 입장에서 ETF는 규모가 작으면 운영할수록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총보수가 연 0.3%인 ETF에 30억원이 들어 있으면 운용사가 1년에 버는 돈이 900만원입니다. 지수 사용료를 내고 유동성공급자를 붙이고 회계감사를 받으면 남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일정 규모 아래로 내려가면 정리 대상이 됩니다.
실제로 어떤 종목들이었는지 보시죠.
| 마지막 거래일 | 종목명 | 그때 순자산 |
|---|---|---|
| 2020-12-23 | KBSTAR KRX300선물인버스 | 1억원 |
| 2020-05-21 | ARIRANG KRX300산업재 | 2억원 |
| 2024-06-25 | KBSTAR 200산업재 | 3억원 |
| 2025-05-21 | RISE 국채선물5년추종인버스 | 3억원 |
| 2024-06-25 | KBSTAR 200커뮤니케이션서비스 | 4억원 |
| 2022-12-20 | TIGER 가격조정 | 4억원 |
| 2020-06-22 | TIGER 코스닥150로우볼 | 5억원 |
공통점이 보이시나요? 섹터를 잘게 쪼갠 상품, 방향을 거는 파생 상품, 특정 스타일을 좁게 겨냥한 상품입니다. 아이디어는 그럴듯한데 사는 사람이 적었던 것들이죠.
ETF의 평균 수명은 2년입니다
수명도 재봤습니다. 다만 여기엔 함계가 하나 있습니다. 저희 데이터가 2020년 1월 2일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그 전에 상장한 종목은 실제 나이를 알 수 없습니다. 194종 중 100종이 여기 걸립니다.
그래서 2020년 1월 6일 이후에 상장해서 그 뒤에 사라진 종목, 즉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저희가 전부 지켜본 94종만 따로 셌습니다.
| 구간 | 상장부터 폐지까지 |
|---|---|
| 가장 짧았던 종목 | 363일 |
| 하위 25% 지점 | 484일 |
| 가운데 값 | 756일 (약 2.1년) |
| 상위 25% 지점 | 1,100일 |
| 가장 길었던 종목 | 2,119일 |
가운데 값이 2년 조금 넘습니다. 가장 짧은 것은 363일, 상장한 지 1년이 되기 전에 문을 닫았습니다.
ETF를 장기투자 도구로 알고 계신 분들께는 낯선 숫자일 겁니다. 그런데 이게 ETF라는 그릇의 문제는 아닙니다. KODEX 200이나 TIGER 미국S&P500 같은 대표 상품은 십수 년째 멀쩡히 굴러가고 있죠. 문제는 그릇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아이디어의 수명입니다.
퇴출은 최근 2년에 몰려 있습니다
연도별로 세어 보면 흐름이 보입니다.
| 연도 | 퇴출 종목 수 |
|---|---|
| 2020 | 29 |
| 2021 | 25 |
| 2022 | 6 |
| 2023 | 9 |
| 2024 | 42 |
| 2025 | 35 |
| 2026 (8월까지) | 16 |
2024년과 2025년 두 해에만 77종이 사라졌습니다. 162종의 절반에 가깝죠.
같은 기간에 새로 상장한 ETF는 이렇습니다.
| 연도 | 신규 상장 |
|---|---|
| 2022 | 139 |
| 2023 | 160 |
| 2024 | 174 |
| 2025 | 173 |
| 2026 (8월까지) | 124 |
매년 150종 넘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국내 ETF는 2020년 1월 451종에서 2026년 8월 1,163종으로 늘었습니다. 6년 반 만에 2.6배가 됐죠.
이 둘을 겹쳐 놓으면 지금 시장의 모습이 나옵니다. 상품이 쏟아지는 만큼 정리되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운용사들이 테마가 뜰 때마다 상품을 내고, 자금이 붙지 않으면 몇 년 안에 접는 사이클이 자리를 잡은 겁니다.
그래서, 지금 위험한 종목은 몇 개일까요?
여기까지가 부검 결과입니다. 이제 진짜 궁금한 걸 봐야죠. 지금 살아 있는 1,163종 중에 그 구간에 들어와 있는 종목이 몇 개인가?
2026년 8월 13일 기준으로 세어 봤습니다.
| 순자산 구간 | 현재 종목 수 |
|---|---|
| 30억원 미만 | 14종 |
| 50억원 미만 | 43종 |
| 100억원 미만 | 166종 |
| 300억원 미만 | 437종 |
퇴출된 종목의 78.9%가 마지막에 50억원 미만이었는데, 지금 그 구간에 43종이 해당되 있습니다.
가장 작은 15종은 이렇습니다.
| 순자산 | 종목명 | 섹터 |
|---|---|---|
| 1억원 | ACE 러시아MSCI(합성) | 러시아시장지수 |
| 3억원 | RISE 국채선물5년추종 | 채권 |
| 11억원 | PLUS 200선물인버스2X | 코스피 |
| 13억원 | TIGER BBIG레버리지 | 기술주 |
| 15억원 | HANARO 200선물인버스 | 코스피 |
| 16억원 | ACE 미국빅테크TOP7 Plus인버스(합성) | 기술주 |
| 16억원 | KIWOOM 200선물인버스 | 코스피 |
| 21억원 | RISE 팔라듐선물인버스(H) | 팔라듐 |
| 21억원 | RISE 코스닥150선물인버스 | 코스닥 |
| 21억원 | KIWOOM 200선물인버스2X | 코스피 |
| 23억원 | KIWOOM 코스닥150선물인버스 | 코스닥 |
| 25억원 | RISE 미국반도체인버스(합성 H) | 반도체 |
| 25억원 | RISE 200선물인버스 | 코스피 |
| 27억원 | KODEX 골드선물인버스(H) | 금 |
| 30억원 | ACE 인버스 | 코스피 |
목록을 보시면 대부분 인버스입니다. 시장이 크게 오른 뒤라 하락에 거는 상품에서 돈이 빠져나간 결과죠. 여기까진 설명이 됩니다.
그런데 네 번째 줄을 다시 보세요.
TIGER BBIG레버리지, 13억원.
BBIG는 2020년과 2021년에 가장 뜨거웠던 테마입니다. 배터리, 바이오, 인터넷, 게임의 앞 글자를 딴 이름이었고, 당시 증권사 리포트와 유튜브가 이 네 글자로 도배됐습니다. 그 테마를 담은 ETF가 지금 13억원입니다.
테마가 식으면 상품도 같이 식습니다. 그리고 상품이 식으면 어느 시점엔가 정리 대상이 됩니다.
상장폐지되면 내 돈은 어떻게 되나요?
여기서 오해를 하나 풀고 가야 합니다. ETF 상장폐지는 주식 상장폐지와 다릅니다.
주식이 상장폐지되면 그 회사의 가치가 사라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ETF는 그 안에 실제 자산이 들어 있고, 폐지될 때 그걸 팔아서 순자산가치 기준으로 투자자에게 돌려줍니다. 위에서 본 194종 중 249건의 청산분배 기록이 남아 있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돈이 증발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내가 정한 때에 팔 수 없습니다. 3년 뒤를 보고 샀는데 1년 만에 강제로 정리되면, 그 시점이 마침 저점이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둘째, 세금과 재투자 비용이 발생합니다. 청산 시점에 이익이 확정되면서 과세가 일어나고, 같은 자리를 메우려면 다른 상품을 다시 사야 합니다.
셋째, 이게 사실 제일 큽니다. 폐지가 결정되기 전부터 이미 거래가 말라 있습니다. 규모가 작은 ETF는 사려는 사람도 팔려는 사람도 적어서, 팔 때 제값을 못 받습니다. 폐지 공시를 보고 나가려 하면 이미 늦은 경우가 많죠.
즉 상장폐지 자체가 손실을 만드는 게 아니라, 상장폐지될 만큼 작아지는 과정에서 이미 불리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뭘 보면 될까요
연구 결과를 실전에서 쓸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사기 전에 순자산총액을 봅니다. 수익률보다 먼저 봐야 하는 숫자입니다. 100억원이 하나의 기준선이고, 300억원을 넘으면 웬만해선 정리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시가총액이 아니라 순자산총액을 보셔야 합니다. 둘은 다릅니다.
둘째, 거래대금이 꾸준한지 봅니다. 순자산이 어느 정도 있어도 하루 거래대금이 몇천만원 수준이면 원하는 가격에 사고팔기 어렵습니다. 며칠씩 거래가 아예 없는 종목도 있습니다.
셋째, 순자산이 줄어드는 추세인지 봅니다. 절대 규모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50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내려온 종목과 15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올라온 종목은 같은 200억원이 아닙니다.
넷째, 같은 지수를 따라가는 더 큰 형제가 있는지 봅니다. 코스피200을 담는 ETF는 여러 개 있고, 그중 규모가 압도적인 것이 하나씩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큰 쪽이 안전합니다.
ETF 연구소의 전체 리스트에서 순자산총액 순으로 정렬하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주의 종목 화면은 거래가 마른 종목을 따로 모아 두었습니다.
정리하면
상장폐지된 194종을 열어 본 결과는 이렇습니다.
만기가 와서 정상 종료된 32종을 빼면 진짜 퇴출은 162종이고, 그중 78.9%가 마지막에 순자산 50억원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상장부터 폐지까지 걸린 시간은 가운데 값이 2.1년이었고, 퇴출은 최근 2년에 몰려 있습니다.
지금 살아 있는 1,163종 중 50억원 미만이 43종, 100억원 미만이 166종입니다.
ETF는 좋은 그릇입니다. 하지만 그릇이 좋다는 것과 그 안에 담긴 것이 오래간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죠. 수익률 표를 보기 전에 순자산총액 한 칸을 먼저 보는 습관, 그거 하나만 생기셔도 이 글은 제 몫을 한 셈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반대로 신규 상장을 연구해 볼 겁니다. 새로 상장한 ETF는 그 뒤에 어떻게 됐을까요? 2020년부터 상장한 674종을 12개월씩 추적한 결과를 정리했습니다.
분석 기준
- 데이터: ETF 연구소 수집 국내 상장 ETF 일별 시세 (2020-01-02 ~ 2026-08-13, 1,178,384건)
- 원천: 공공데이터포털 금융위원회 ETF 시세 정보
- 대상: 상장폐지 처리된 194종 전수. 종목명에 만기 표기(
YY-MM)가 있는 만기매칭형 32종은 분리 - 수명 통계: 관측 시작일 절단 영향을 피하기 위해 2020-01-06 이후 상장분 94종만 집계
- 현재 종목 수치: 2026-08-13 종가 기준
이 글은 공개된 시세·공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분석에 쓴 기간과 기준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는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